🌿 나에게 예의를 지키는 유일한 방법

2024. 3. 11.

나에게 예의를 지키는 유일한 방법 🌿

독자님은 스스로에게

예의를 지키고 계신가요?

자아의 뿌리가 얕은 저는

누가 한 번만 알아줘도

코가 끝없이 높아지고,

부정적인 말을 들으면

스스로를 한심하게 여기며

수치심에 갇히곤 했습니다.

혹여 독자님도 그때의 저처럼

사람과 함께 있어도 어딘지 멍하고,

망망대해에 홀로 떠 있는 기분이 든다면

여기 비슷한 사람이 또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만큼은

솔직함을 선사하셨으면 해요.

적어도 예민한 만큼

스스로에게 솔직하시기를요.

저는 그게 나에 대한 존중이고

예의라는 것을 아주 늦게 배웠습니다.

내 감정과 생각을 마구 내질러보는 것이

인간의 기초적인 욕구라는 사실도

아주 늦게 깨우쳤지요.

제게 맨 처음 무례하고 미숙했던 건,

무심한 가족과 그럴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지만

거기서 받은 대우를 그대로 흡수하고

조금도 뱉어내지 못한 채로,

저에게 가장 폭력적이었던 사람 역시

저였거든요.

그래서 오늘은, 늦게나마

스스로와의 예의를 지키기 위해 썼던

<나 관찰일지>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나.. 관찰일지..?

가상의 식물학자가 되어

나를 식물로 바라보는 관찰일지입니다.

다은이 스스로에게 예의를 지키기 위해

고안한 글쓰기 방식이에요.

일기랑 뭐가 달라요?

관찰일지의 첫 문장은 반드시

<지금 내 식물은...> 으로 시작합니다.

예를들어,

지금 내 식물은 열등감에 시달리는 것 같다.

이렇게요.

진짜 식물은 열등감에 시달릴 리 없지만

제 마음 식물은 자주 시달려서 적어봤습니다.

그거 쓰면 뭐가 좋은데요?

식물학자의 눈으로 운을 떼면

희한하게도, 나에게 거리를 두게 됩니다.

좋은 의미에서 나를 타자화 시키지요.

그래서 일기보다 거짓을 덜 쓰게 되고

그대로 쓰기에 너무 신랄하거나 민망할 때는

다시 관찰자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관찰자와 1인칭을 오락가락 하다보면

생각지 못한 답이 나오기도 하고요.

인생 피곤해 죽겠는데

그걸 누가 시간 내서 써요...

나도 모르게 감정을 억누르는 사람이,

마음을 풀어놓고 싶은데 막막할 때.

쓰면 좋습니다.

식물학자가 되어 내 식물의

감정을 바라보고 이름을 붙여주면

걔도 알아서 자기 길을 떠나거든요.

그러고나면 마음이 조금씩 자라고

식물학자 본체의 마음도 개운해집니다.

귀찮은데...

안 할 확률이 높지만

방법은 알려줘봐요.

물론 독자님이 회복탄력성이 좋고

타고나길 심신의 뿌리가 튼튼하며,

주변에 맑고 건강한 사람이 많다면

나를 들여다보는 글을 안 써도 괜찮습니다.

본래 이런 것은 궁지에 몰려야 쓰게 되잖아요.

제게도 글을 안 써도 괜찮은 환경과

타고난 멘탈이 있었다면 참 좋았을 거예요.

하지만

그런 세상과 멘탈이 없으니...

<나 관찰일지> 매뉴얼을 이어갑니다.

1. 식물학자가 되어 나를 식물로 바라본다.

2. 관찰자 시점으로 내 몸과 마음을 살핀다.

3. <지금 내 식물은>으로 문장을 시작한다.

4. 식물에게 벌어진 일들을 적는다.

식물일지는 원래 사소하므로, 사소해도 적자.

5. 변화가 없어도 쓴다.

변화나 성장은 원래 드라마틱하지 않고, 매번 변화하고 성장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다. 개의치 말고 식물학자의 본문을 다하자.

ex) 2024. 01. 18.

지금 내 식물은 기분이 안 좋다. 짜증난다.

맞다. 기분 안 좋다. 짜증난다. 사람 만나기 싫다. 왜 불필요한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나가는 것도 일인데 무례하거나 노잼이기까지 하면 비효율적이다. 한 번 누굴 만날 때 감정을 너무 많이 써서 관계에 쏟는 에너지 조절이 어려운 것 같다. 이 식물의 진짜 문제는 호감을 받거나 제안 받으면 그래! 하고 다 만날 기세로 나간다는 점이다. 막상 별 생각 없이 나가면 높은 확률로 티키타카가 안 돼서 금방 기빨리면서. 나를 좋아해주고 나도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야지. 좋아해준다고 다 만나지 말고. 마음이 비었다고 아무나 들이지 말 것. 그 사람한테도 나한테도 실례다. (특히 나한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