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이제는 누가 툭 치면

불 같이 화가 끓어오르거나

물건을 부수고 싶은 충동은 안 들지만

어디서든 긴장하는 새가슴인 점이나,

사람을 만나고 오면 적어도

하루는 집에 있어야 하는 점.

길에서 흥얼거리다

근처에 누가 있는 걸 깨달으면

한 없이 부끄러워지는 마음도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사실 상담이니 관계 연습이니,

핑계대며 가장 바꾸고 싶었던 건

지금까지 적은 [심약한 파트]였는데 말이지요.

마음이 필요 이상으로

섬세하게 흐르는 성질 머리를 고쳐서

세상에 맞는 무던인이 되고 싶었는데,

다른 것은 다 변해도 이것만큼은,

지난 노력과 세월이 억울할 만큼

조금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마음 챙김을 많이 하면.

일기를 많이 쓰면.

상담을 더 깊이 받으면.

유들유들하고 무던한 사람이

될 줄 알았는데

10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렇게 단점이 줏대 있다니요.

어쩌면 제가 바꾸고 싶었던 건

제 본질이었던 모양입니다.

결국 저는 시절 내내,

제 본질을 끔찍이

싫어했던 걸지도 모르겠어요.

여기까지 오니,

사람에게 말하는 [고친다]는 표현이

무척 부적절하게 느껴졌습니다.

제가 참 오랬동안...

자기 발전이나 다듬기를 넘어서,

자기 개조를 원했던 것 같아서요.

다행히 지금의 저는

본능적으로 아는 것 같습니다.

[지금 버전]의 나로서는

이게 최선이라는 것을요.

그리고 지난 모든 선택이

나를 지키기 위한

최선이었다는 것을요.

대충 흘려보낸 선택도

심사숙고 끝에 고른 선택도,

전부 나와 주변 환경의 한계였지만

한계의 다른 말은

최선이기도 하다는 사실을요.

결국 과거를 애도하면서

이렇게 종결지었습니다.

[나는 그 시절, 그 장소에서,

그 몸과 그 경험치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

그래서 이제는 다른 존재가 되려고

치는 발버둥에 지친 것 같습니다.

이렇게나마 과거를 놓아주는 것이

멀티버스 계에서 한명 뿐인

다은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고,

지금을 부정하면서는

무엇도 희망할 수 없다는 사실을,

수많은 타인을 따라하고

가랑이를 찢으면서 배웠으니까요.

물론 저도

가랑이 찢기를 그만두기까지

숱하게 꺾이는 과정이 필요했지만요,

그래도 독자님은

이보다 가랑이를 더 찢을 수 있다고

너무 애쓰진 않으면 좋겠습니다.

적어도 [나 지금 가랑이 찢고 있네]를

환기하듯, 자주 알아주셨으면 해요.

타인을 의식한 가랑이 찢기는

자주 배신하지만

나를 위한 인정 발버둥은

절대로 배신하지 않으니까요.

💌

오두막 지기는

독자님의

감상이 궁금해요.

오늘 레터를 읽고

떠오른 이야기가 있거나

답장을 보내고 싶을 때는

우편함에 기꺼이 알려주세요.